'석상 갤러리' 20명이 지켜보는 홀…조금만 삐끗해도 물속에 '풍덩'

입력 2022-12-09 18:13   수정 2022-12-09 23:45


워터 해저드를 피하는 최선의 방법은 물이 없다고 스스로를 세뇌하는 것이다. 쉬운 일은 아니다. 애써 못 본 척 ‘마인드 컨트롤’을 해봐도, 큼지막한 입을 벌리고 있는 연못에 눈이 가는 순간 불길한 예감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그린이 물에 둘러싸인 아일랜드 홀이라면 불안감은 더 커진다. 아름답기까지 하면 샷에 집중하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경기 이천의 명문 퍼블릭 골프장 사우스스프링스CC의 시그니처홀은 레이크 8번홀이다. 멋스럽기로 국내에서 손꼽히는 아일랜드 파3홀이다. 청초록색 연못 위에 떠 있는 그린의 양쪽 옆구리와 뒤에는 소나무 숲이 병풍처럼 자리잡고 있다.
갤러리 20여 명이 지켜보는 홀
스윙에 집중하기 위해 풍광은 미리 감상했다. 감탄사를 쏟아낸 뒤 거리측정기를 꺼냈다. 핀은 중핀. 화이트티에서 140m 거리다. 하지만 10m 내리막을 감안해야 한다.

살려면 방향보다 거리가 중요한 홀. 핀보다 길게 공이 떨어지면 그린 뒤 해저드로 흘러간다. 짧으면 그린 앞에 있는 두 개의 벙커에 빠지기 십상이다. ‘백팔번뇌’로 불리는 사우스스프링스의 108개 벙커 중 두 개다. 여기에 빠지면 사실상 파는 물 건너간다. 아일랜드홀에선 벙커샷을 치는 게 일반 홀보다 훨씬 까다롭기 때문이다. 자칫 ‘홈런’이 되면 그린 반대편 물에 들어가는 만큼 스윙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티샷을 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번뇌가 찾아왔다.

8번 아이언을 꺼내들었다. ‘물은 없다’고 되뇌었다. 핀은 그린의 정중앙, 티잉 그라운드에서 보기에는 약간 오른쪽이다. 핀을 직접 노렸다가 조금이라도 밀리면 그린 중앙까지 파고든 오른쪽 벙커에 빠질 게 뻔했다. 그래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골반을 돌렸다. 공은 똑바로 날아갔다. 거리도 딱 맞았다. 프로나 할 수 있다는 ‘스트레이트’ 구질에 ‘핀하이(핀과 같은 거리)’였다. 아쉬웠다. 이럴 줄 알았으면 깃대를 똑바로 보고 치는 건데…. 공은 그린 왼쪽 끝에 떨어졌다. 겨우 마크할 수 있을 정도로 아슬아슬한 ‘온 그린’이었다. 15m 오르막 퍼팅이 남았다.

“뒤를 한번 돌아보세요. 갤러리들이 많네요.” 퍼팅 라인을 읽는데 함께 라운드한 사우스스프링스 최고마케팅책임자(CMO)인 임지선 프로가 뒤쪽 언덕을 가리켰다. 그곳엔 20여 개의 석상(石像)이 그린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 골프장엔 이런 석상이 230여 개나 있다. 보광그룹이 골프장을 지을 때 지관(地官)의 권유로 나쁜 기운을 막는 석상을 코스 이곳저곳에 배치했다고 한다. ‘석상 갤러리’들의 기운을 받아 버디 퍼트를 시도했지만, 홀 1m 앞에서 멈췄다. 파로 마무리. 티샷하기 전의 번뇌는 씻은 듯이 사라졌다.
자연의 멋을 살린 골프장
사우스스프링스는 원래 휘닉스스프링스란 이름의 고급 회원제 골프장으로 2009년 개장했다. 2016년 보광그룹에서 형제 회사인 BGF그룹으로 주인이 바뀌면서 대중제로 전환했다. 지난해 사모펀드 센트로이드PE를 새 주인으로 맞았다. 인수 가격은 당시 국내 골프장 거래 최고가인 홀당 96억5000만원이었다. 주인이 두 번 바뀌고 회원제에서 대중제 골프장으로 전환됐지만 명문 골프장으로서의 명성은 잃지 않았다. 그 덕분에 그린피가 최대 32만원(피크시즌 주말 기준)에 달하는 데도 언제나 ‘풀부킹’이다.

이 골프장이 왜 명문인지, 왜 비싼 그린피에도 풀부킹인지는 페어웨이 잔디를 밟는 순간 알 수 있다. 짧고 빳빳한 잔디가 빽빽하게 심어진 덕분에 숏티 위에 공을 올려놓고 치는 느낌이 든다. 에버랜드(삼성물산 리조트부문)가 한국 골프장 환경에 맞게 개발한 잔디인 ‘안양중지’다. 안양CC, 가평베네스트CC, 안성베네스트CC 등 삼성 계열 골프장에 깔린 바로 그 잔디다. 잎이 넓은 한국 잔디와 좁은 양잔디의 장점을 살렸다. 삼성의 사돈그룹인 보광도 이 골프장을 만들 때 안양중지를 도입했다. 지금도 삼성물산 리조트부문에 소속된 잔디환경연구소가 시즌마다 코스를 방문해 잔디 상태를 관리한다.

코스는 원래 있던 자연을 그대로 살렸다. 어디를 둘러봐도 억지로 산을 깎거나 흙을 쌓아올린 법면을 찾아볼 수 없다. 그린에서 페어웨이를 돌아보면 자연 그대로의 곡선미를 느낄 수 있다. 원형녹지 보전율이 60.8%에 달한다. 개장한 지 20여 년밖에 안 됐는데도 오래된 골프장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코스 전반에 걸쳐 심어놓은 1200여 개의 적송(赤松)은 골프장의 기품을 더한다.
백팔번뇌를 내려놓고 해탈의 플레이
아름다운 풍광에 지형도 완만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코스다. 전장은 길고 그린은 빠르다. 거리와 정확성을 모두 갖춰야 한다. 불교의 백팔번뇌에서 착안한 108개의 벙커는 공이 떨어질 만한 곳마다 어김없이 놓여 있다. 그래서 사우스스프링스CC를 경험한 아마추어 골퍼 중 상당수는 ‘오늘 친 샷의 절반이 벙커샷’이란 후기를 남긴다.

모래만큼이나 물도 많다. 레이크코스에는 워터 해저드가 무려 7개나 있다. 동반한 캐디는 라운드를 시작하기 전부터 “평소 스코어보다 10타 정도 더 나온다고 생각하고 편안하게 치라”며 “백팔번뇌를 내려놓지 못하면, 해탈하지 않으면 이 골프장을 즐길 수 없다”고 했다.

임지선 프로는 “선수 시절부터 이 골프장을 좋아했기 때문에 센트로이드로부터 CMO 제안이 왔을 때 고민 없이 수락했다”며 “시그니처홀도 아름답지만 그린 앞 소나무를 보고 세컨드 샷을 해야 하는 마운틴 2번홀도 그에 못지않다”고 말했다.

이천=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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